용서란 무엇일까? 단상

어디선가 미움에게 방 한칸 내어주는 것이 용서라고 들었다. 미움이란 감정을 인정하고 거기에 자그마한 자리 하나 내주면 용서가 되는걸까? 미움이란 감정위에 진정한 용서가 성립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 이전에 떠오르는 질문 하나.
 "내가 누군가를 감히 용서하고 말고 해도 되는 사람일까?" 
 우리는 누구나 상처주고 상처받는 부족한 사람들일 뿐인데 누가 누굴 용서하고 용서받는단 말일까.

 그럼에도 용서는 필요한 일인 것같다. 누군가를 미워하기 이전에 내 마음대로 그에게 용서란 면죄부를 주고 좋은 마음으로 살기 위해.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마음같다. 나의 용서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순간만큼은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으니까. 나도 모자라니까 그 사람도 모자란 모습을 내게 보인 것 뿐이야. 그러니까 괜찮아.


즐거운 편지 -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에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이라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시가 매력적이라고 느끼게 만든 시)

뼈아픈 후회 -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람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니었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의 자기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알을
넣어주는 바람 뿐

(후회하고 싶지 않은데 나는 벌써 후회한 듯하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는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기다려본 경험을 떠올리며 설레는 시)


죄와 벌 - 김수영

남에게 희생을 당할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사십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충격적이면서 심리를 잘 그려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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